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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담 이야기

[리담일기] 새벽감성 신짜오

by 리담 2021.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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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담일기] 새벽감성 신짜오
2021년 12월 12일 새벽



지난번 첫번째 일기에 나의 현재 상황과 고민을 적어보며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정말 그냥 일기 쓰듯이 썻는데.. 많은 이웃님들이 방문해주었고, 응원도 해주셨다. 인터넷 안에서 친구 또는 이웃을 만들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아무도 나의 이런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지 않을 것 같았는데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시고 응원해 주는 글들을 보며 이곳도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한번 나의 이런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이웃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새벽감성’ 이라는 것은 누구나 한번은 들어 봤을 듯 한데, 오늘이 내게 그런 날인 것 같다. 그렇다고 우울하거나 어두운 감정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원래도 새벽을 좋아했다.
새벽에만 느낄 수 있는 공기는 맑고 차가우며 민트사탕을 먹은 듯한 상쾌함, 작은 물소리도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웅장한 소리로 만들어버리는 그 고요함, 내가 상상하는 것들이 갑자기 현실로 나타날것 같은 어둠, 이 3박자가 만드는 감성이 지금 이 새벽의 감성인것 같다. 이 감성을 가지고 곤히 잠들면 좋겠지만..카페인 덕에 잠이 안오니 지금 떠오르는 이야기를 쭉 적어보려한다.

나는 다른 나라를 다녀보며 그곳의 사람들과 문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지금것 가봤던 나라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인도, 베트남 이었다. 누군가는 내가 여행을 한것이라고 생각 할텐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하게는 베트남 빼고 다 봉사를 하러 갔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베트남은 내가 다녀온 나라중에 최장 기간(10개월) 있으면서 이야기도 많은 나라다. 처음 베트남을 가게 된것은 친구 덕분이었다. 친구의 소개로 베트남에서 일을 하게되었고 그때 처음 그 나라에서 지내면서 그나라의 기후, 분위기, 사람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또한 베트남에서 경험했던 모든 것이 내겐 너무 소중하다.

새벽감성 신짜오
5월 초 한국은 벚꽃이 핑크빛으로 물들며 따스하고 상냥한 햇볕과 연녹색 푸르름이 너무 예뻤다. 나는 그때의 설램으로 베트남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렇게 말하면 참 로맨틱하고 좋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나는 당시 나혼자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간적이 없었다. 그래도 여태 인천공항을 다녀본 경험에 의지해 비행기 출발 한시간 전에 티켓팅을 하는 장소에 도착했고 수화물을 부치기 위해 기다렸다. 물론 내앞에 아주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설마 한시간을 다 잡겠어?’ 라는 나의 이 안일한 생각은 빗맞았고 진짜 출발시간 15분전에 수화물을 부치게 되었다.. 으악.. 이렇게 촉박하게 비행기를 타본적이 없는데.. 당시 나는 기내용 캐리어(약 10kg)와 노트북(구형이라서 이것도 3kg 가까이 나감)과 작은 가방을 가지고 초인적인 힘으로 내 달리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왜그리 멀리있는지.. 계단을 엄청 내려가서 트레일러(?)를 타고 낑낑거리며 겨우 비행기에 탑승했다. 지금 생각해도 젊어서 가능한가.. 싶다.

겨우 비행기를 타고 잘가나 싶었는데 이번엔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근데 내가 지금까지 비행기 타면서 화장실을 거의 이용을 안했었다는게 문제가 되었다. 기내의 화장실 문은 밀어서 폴더처럼 접히는 방식인데 급한 나는 아무리 문을 열려고 해도 안열리는 문에 당황해 하면서 승무원을 찾았다. 다가온 승무원은 남자분이었고 당시 나는 너무 당황해서 영어도 안나오고 그저 손짓으로 화장실 문이 안열린다는 모습을 전달 했는데 승무원은 ‘이 안에 사람이 있는데 안열려요’ 라고 알아들은것 같았다. 갑자기 사색이 된 승무원은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안에 누구 있냐고 말하면서 지금 열겠다고 하고 확 열었다.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틈에 땡큐를 말하며 후다닥 들어갔다. 아직도 기억 난다. 그때의 그 승무원의 표정.. 그 당황스러워 하던 표정 (그땐 미안했어요). 승무원분이 그렇게 오해를 하게 된것은 이유가 있다. 내가 화장실에 가기전 화장실 앞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마지막 이었고 그 남자 승무원은 내 앞에 사람이 들어가는 것까지 봤다. 물론 앞사람이 나오는 것은 못보았고, 나는 문을 열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후에 그 일이 벌어진것. 나는 그 일 이후 기내안에서 화장실 문을 아주 잘 열게 되었다.

공항에서 베트남 도착 전까지도 이런 일들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설램과 기대 속에 불안과 초조가 섞인 아주 묘한 감정 상태였다. 베트남 도착 후에 베트남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를 찾는 일도 내게는 미로였다. 공항이 엄청 큰것도 아니었고 그 당시 친구는 내게 버거가게 앞에 자신이 있으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문제는 내가 휴대폰을 로밍해서 가지 않아 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는데.. 진짜 미아가 되지 않을까 싶어 공항안에 직원들에게 버거가게를 물어봤지만 왠지 모르게 못알아 듯는 듯한 제스처와 비웃음 같은 웃음 소리만 들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들이 영어를 잘 몰랐거나 내 발음이 이상했거나 둘중 하나인것 같다. 어찌 되었든 빙빙 돌아 친구를 겨우 만났고 친구와 함께 숙소를 가게 되었다.

물론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시작이다. 진짜 나도 내 기억력이 놀랍다. (약 8년전 이야기) 그날이 많이 충격적이긴 했다보다.
코로나 때문에 못가니까 더 생각나는 나라랄까? 10개월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그만큼 기억하고 싶고 말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서 기록해 두고 싶었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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